즐겨 찾는 레이싱 특선

어릴 적 무작정 자동차가 좋아서 볼 기회조차 없는 레이싱에 까지 막연함이 있었다.
지금도 레이싱 중계는 케이블에서 찔끔찔끔 해주는 그야말로 목축이기도 힘든 수준인데, 십수 년 전엔 말할 것도 없었지. 두어 번 정도만 우연히 봤던 기억이 있다.

그러다가 2002년 컴퓨터를 샀고 한 줄기 빛이 들었는데, 그나마 구한다고 구하던 유일한 루트가 바로 당나귀.
그때만 해도 토렌트가 활성화되길 했나 ucc가 있나 뭐가 있나...운 좋으면 풀버전 구하고, 아니면 대충 숏클립만 모으면서 만족하던 시절이었다. 2002년 말?쯤엔 한 동호회 자료실에 녹화해서 꾸준히 올려주시는 용자님 덕에 그래도 에프원은 꾸준하게 볼 수 있었다.

2004년 5월.
대약진의 시기, 쉽게 말해 폈다.
우연히 f1racingworld란 사이트를 찾았는데 지금 모 사이트의 전신이 되는 토렌트 터전이다. 개장한지 1~2주밖에 안 됐었는데도 엄청난 자료의 집중에 후덜...진짜 닥치고 받았다. 솔직히 안 보면서 막 쓸어 담았다. ㅎㅎ

그렇게 지금까지 오면서 재밌는/재미없는 시리즈가 취향대로 갈렸고 그 리스트를 간략하게 정리해 볼까 한다.

1. Formula 1
제일 좋아하는 시리즈.
이름값, 얼굴값 확실히 하는 명실상부 제일 빠르고 일단 표면상으론 최고의 드라이버들이 부대끼는(개인적으론 동의 못하지만) 최고의 씬이다.
오픈휠로는 유일하게 각 팀이 직접 셰시제작을 맡고 있어 성능이 제각각 이라 그로 인해 감정이입이 쉽고, 선수경쟁 외에 기계경쟁이란 진정 레이싱에 걸맞는 마초스런 맛이 있어 더 열광적으로 볼 수 있다. 덤으로 돈과 권력 등의 뒷구녕 정치경쟁도 있어 누구라도 씹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애착이 솔솔 피어오르게 되어 있다.

원래는 "이 레이스엔 소울이 있다."란 멋있어 보이는 멘트로 마무리할라 그랬는데 도저히 그런 평가는 못 내리겠다.
모즐리/버니란 두 신발놈들이 살아있는 한.

2. GP2
애착까지는 아니지만 이 대회도 아주 좋아한다.
이유는 위 에프원의 경우와 완전 반대다. 모든 팀이 똑같은 자동차를 타고 달리므로 해서 순수하게 드라이버의 대결을 즐길 수 있다. 에프원 정도 레벨이면 다들 거기서 거기라 누가 더 빠른지 객관화시키기 어려워 운동선수로선 변명거리가 많은데, GP2에선 얄짤없다. '느려보이는 놈=느린 놈' 이다. 이 바로 위에 에프원이 자리 잡고 있어 잘만 하면 에프원에 입성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다들 똥줄타게 달리며 도그파이트가 종종 있어 아마도 내가 보기에 제일 원초적이 아닌가 싶다.

3. WRC
저 임프레자 뒤의 건더기를 보라!
비주얼이 비주얼이니 만큼 밋밋한 온로드에 비해 훨씬 화려하고 변수도 많다. 서킷 레이싱 보다가 누가 쭈욱 미끄러지며 뽀록으로 자세를 잡으면 "우와 드리프트다!" 놀라지만 여기선 드리프트가 그냥 숨 쉬듯이 나온다. ㅎㅎ
다른 레이스와 다르게 기록경주라 최근 몇 년처럼 누군가 독주를 해도 사실 비주얼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다. 최근 스바루가 빠져서 개인적으론 아쉽지만.

4. Nurburgring 24 hours
주요 내구레이스 중 유일하게 끝까지 보는 이벤트.
세계에서 제일 어려운 트랙, 내가 만약 진짜 뛰어난 드라이버라 치면 이걸 어떻게든 정복하고 싶었을 것이다.
르망이 오벌이면 이거슨 랠리 24시간! 암~ 이 정도는 돼야 진정으로 빡센 레이싱이지!

5. WTCC
진짜 스포츠다운 맛은 원메이크나 투어링카에 있다.
니나 내나 하면서 부비부비 대는 특성상 추월이 잦고 몸싸움이 자주 나온다. 잘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사람이 잘한다고 원메이크는 아니지만 성능이 비슷비슷해서 그 와중에도 노련한 선수가 주로 상위권을 차지한다.
앞바퀴 굴림 차가 달린다고 무시하지 마시라. 나름 에프원 선수였던 몬테이로도 있는데 경기 중 전혀 주목받지 못한다. 그런 투어링카 시리즈 중에서 제일 권위 있는(일단 이름에 World 딱지가 붙으니) 경주이다.

6. BTCC
명성은 WTCC지만 그래도 투어링카의 꽃은 BTCC라 볼 수 있을 거 같다.
기본적으론 같은 규정이지만 훨씬 역사가 깊고, 차종도 더 많고, 비교적 현대적인 트랙을 사용하는 WTCC에 비해 BTCC는 대부분이 클래식한 트랙으로 구성돼 있다. 노면이 불규칙하고 고저 차가 심한 코스가 많아서 더 박진감 넘친다. 똥줄 경기의 진수 중 하나.

7. STCC
이것도 위와 같은 S2000규정이다. 특이할 건 없지만 BTCC보다 더 다이나믹 한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다.
캐주얼 하게 즐기면 되는 레이스.

8. DTM
투어링카 시리즈 중에 최고로 빠르다.
다른 레이싱과 공유되는 트랙이 적어서 폭넓은 비교는 힘든데, 그래도 오셔슬레벤이나 호켄하임링, 부르노 등을 FIA-GT와 비교하면 GT1클래스 보다도 2~6초가량 빠르다. 투어링에 450~480마력 밖에(?) 안 나가는지라 몰랐던 사람이 적지 않을 듯.
아무튼 그래서 각종 GT나 LM 시리즈에서 상위권 선수는 DTM 출신들이 많다. 하키넨이나 프렌첸, 알레시, 슈마허 등처럼 F1 선수도 있었지만 에프원 경험했다고 다 짱먹는 게 아니라는 걸 자~알 보여준다.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회사 빤스와 어휴디 둘의 자존심을 건 구도도 있다. 누가 이걸 정식 게임으로 만들어 줬으면 좋겠는데...

9. V8 Supercars
홀덴과 포드, 둘 다 관심 밖이라 그동안 안 봤는데 올해부터 보고 있다.
차량에 정이 안 가는 거만 빼면 볼만한 듯. 보다 보면 가끔 페달이나 타이어캠 같은 희귀 앵글이 건빵의 별사탕처럼 나와주는데 그 맛으로 보기도 한다. ㅎㅎ

10. FIA-GT
진짜 스포츠카의 레이스! 확실한 얼굴마담들이 있어서 그 이유로 왠지 보고 싶게 만든다.
근데 솔직히 보면 잠만 와서 잘 안 본다. 니미 씨보랄 탱탱보랄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식의 박 터지는 싸움이 없다고 보면 된다. 굳이 비유하자면 쇼프로 나온 김태희 정도? 재미에 비해 레이스도 길기는 오질 나게 길다. 그래도 좋아하는 스포츠카가 나온다.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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